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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 왕의 남자> 조선시대 연산군 이준기 감우성 주연

by mother-shark 2023.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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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영화 < 왕의 남자 > 줄거리 및 결말
  • 조선시대 연산군
  • 영화 < 왕의 남자 > 감상평

병풍 앞에 남자 여자 주인공 4명 사진

영화 < 왕의 남자 > 줄거리 및 결말

남사당패의 광대 주인공 장생과 공길 이 둘은 세상에서 오직 둘만 의지하며 웃음도 팔도 이야기도 파는 이야기꾼이다.

그들에게 재주를 사던 양반들은 재주를 빙자하여 공길의 몸을 원했고, 사당패를 위해 몸을 파는 공길을 볼 수 없었던 장생은 그 길로 공길과 함께 한양으로 도망치게 된다. 한양에 도착하여 육갑과 칠득이 있는 놀이패에 합류하게 된 이들. 장생과 공길은 큰 판인 한양에서 왕을 가지고 놀아보기로 하고, 이야기를 만든다. 이 당신 왕인 연산군과 그의 애첩 장녹수를 풍자하여 공연을 만들게 되고, 이 공연은 큰 인기를 얻는다. 하지만 너무 인기가 있었 탓일까. 왕을 희롱한 죄로 모두 잡혀가게 된다. 이들은 꼼짝없이 형벌을 받다가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장생이 기지를 발휘해 왕이 웃으면 왕을 농락한 게 아니지 않냐는 의견으로 왕을 모시는 내관이 이들의 공연을 왕 앞에서 보이게 된다. 이들은 왕 앞에서의 공연을 망치게 되고, 꼼짝없이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생각으로 두려움에 떨던 차 공길이 나서게 된다. 공길의 기지에 웃음이 터지고만 왕. 왕은 광대들의 거처를 궁궐에 마련해 주고 내킬 때마다 이 광대들을 불러 즐기겠노라 신하들 앞에 선포한다. 천한 광대들을 궁에 불러들이니 신하들의 반발은 거셌다. 자신이 어떤 결정을 하든 무조건 반대만 하는 신하들이 지긋지긋하던 연산군.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정해놓은 법도에서 한치도 어긋남을 허용받지 못하며 사는 생활에 질려있는 상태였다. 광대패는 왕을 위한 다음 공연을 준비하게 되고, 다음 공연은 뇌물을 받는 한 관리에 대한 풍자극이었다. 연산군은 너무나도 즐거웠다. 하지만 그 극의 풍자의 대상은 웃을 수 없었고, 결국 그 관리는 잔인한 벌을 받게 된다. 연산군 또한 양반과 다른 게 없던 걸까? 공길은 왕의 침전에 불려 간다. 하지만 연산군은 의외로 천진한 얼굴로 공길에게 놀자고 청하고, 고심하던 공길은 품에 있던 인형을 꺼내 인형극을 선보이고, 연산군은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공길과 인형놀이를 즐긴다. 난폭한 모습 뒤 마음속에 깊은 상처가 있던 연산군. 공길은 형언할 수 없는 마음에 혼란스러워하게 된다. 처선은 광대패들에게 경극을 공연할 것을 제안하고, 장생은 경극을 하길 거절하고 공길과 궁을 떠나자 말하는데, 왜인지 떠나지 못하는 공길. 경극을 마지막으로 궁을 떠날 것을 약속하고 이 경극은 폐비 윤 씨 사건을 연상케 하는 경극이었다. 너무 몰입한 연산군은 이성을 잃으며 경극을 구경하던 선왕의 후궁들을 베어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공길에게 어머니의 복수를 도와줬다며 종 4품의 버슬을 내리게 되고, 왕의 폭주에 반발하는 신하들과 왕의 총애를 빼앗겨 버린 녹수 공길이 탐탁지 않은 마음이 점점 더 커간다. 조정 대신들은 사냥 대회를 핑계로 공길을 살해 려다 실패하였고, 장생은 이 사건으로 공길에게 떠나자고 하였지만, 떠나지 못한다. 광대를 내쫓을 계획을 세우고 이로 인해 공길이 위험해 처하지만 장생이 공길 대신 감옥에 들어간다. 김처선은 정신 차리라며 연산군에게 직언하지만 그는 들을 생각이 없었다. 처선은 장생을 풀어주며 떠나라 말하지만, 그는 떠나지 않고 궁 한가운데서 줄타기를 하며 연산군을 농락하고, 연산군은 활을 쏘게 된다. 그 활을 피하려다 줄에서 떨어지고만 장생.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공길은 왕 앞에서 인형놀이를 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다. 이에 충격을 받은 연산군은 연회를 열기 위해 김처선을 부르지만 그는 이미 목숨을 끊은 뒤였다. 홀로 남은 연산군. 연산군은 장생을 풀어주며 줄타기를 하게 하는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시작한 장생 그것을 애처롭게 쳐다보던 공길은 그와 함께 줄타기를 하기 시작하고, 그 타이밍에 반란군이 궁에 들이닥친다. 반란군이 들이닥치는데도 연산군과 장녹수는 그저 줄타기를 바라보고 있고, 몰려드는 반란군 군사 속에서 장생과 공길은 줄 위로 뛰어오르며 영화는 끝이 난다.

조선시대 연산군

연산군은 흥청망청의 언어가 생길 정도로 향락과 사치에 취해있던 왕으로 알고있다.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을 보면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릴 적 어머니 윤 씨가 일찍 폐위되었다가 결국 사약을 받고 죽었기 때문에 모성애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그 모습은 영화에서도 잘 묘사되었는데, 녹수가 연산군을 아이 대하듯 젖을 준다는 표현이나, 공길과 인형극을 하며 천진한 모습으로 즐거워하는 모습등이다. 성종의 후궁이었던 연산군의 어머니 윤 씨는 중전이 된 지 얼마 안 되어 연산군을 낳아 웃어른들의 큰 사랑을 받았는데 후궁들에게 누명을 씌우거나 저주하기 위한 인형을 만들어 질투가 심한 중전 윤 씨를 보고 성종은 갑자기 자기가 죽었을 때 세자를 등에 업고 악행을 저지를 윤 씨가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얼마뒤 성종의 얼굴에 손톱자국까지 내는 사건이 벌어지며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의 화가 폭발해 결국 폐위되어 사약을 받게 된다. 극 중에도 경극 중에 이 감정이 증폭되며 성종의 후궁들을 칼로 죽여버리고, 인수대비의 밀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는 사건이 보인다. 하지만 연산군이 처음부터 폭군이었던 것은 아니다. 연산군이 임금의 자리에 오른 1494년에는 국방을 튼튼히 하고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하는 정책들을 펼치며 성군의 면모를 보이는 듯했다. 또한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전국에 암행어사를 파견해 백성의 삶을 살피고 관료들의 기강을 바로잡으려는 노력도 했다고 적혀있다. 하지만, 폐비 윤 씨의 신분을 되찾아 주는 일을 해주려다가 반대하는 사림파 신하들과 웃어른들과 갈등을 빚으면서 분노한 연산군은 무오사화 갑자사화 등 두 차례 사화를 일으켜 많은 신하들을 죽이게 된다. 이런 사화를 겪으며 점점 폭군으로 변해갔다. 결국 폭군이 된 연산군은 증종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나면서 죽은 후에도 군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연산군의 시대는 실록에 실리지 못하고 일기가 되었으며, 무덤 역시 능이 아닌 묘라고 불리는 게 되었다.

영화 < 왕의 남자 > 감상평

영화나 드라마로 많이 각색된 연산군과 녹수의 이야기. 이 영화가 개봉할 당시 별 특별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극의 소재에 당시 동성애라는 말 조차 많이 거론되지 않았던 시대에 동성애를 다뤄서 다소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소재임에도 천만명이 넘은 영화가 되었다. 이 영화가 천만이 된 이유는 마니아가 생겨서 그들이 여러 번 관람하고 인증을 하는 것이 유행이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이 영화로 데뷔한 이준기는 여자보다 예쁜 남자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OST다. 이선희 님의 '인연'이라는 노래도 엄청 유명해서 라디오 티브이 어떤 매체에서 계속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5년도에 개봉한 영화인데 지금 2023년에 봐도 영상, OST, 연기, 연출, 스토리가 탄탄한 영화다. 동성애적인 요소를 배제하더라도 너무도 눈과 귀가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영화이니 한번 다시 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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